1.
아니, 윤식이 못 나간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연대, 그 첫걸음을 마치고
필자는 거제도의 사위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아니,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니 그 이유를 찾아보자면 20대 내내 버릇처럼 ‘소나기 퍼붓는 옥포의 조선소에서, 눈보라 날리는 서울 철로 위로’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린 탓이 아닌가 싶다. 물론 옆지기와 연애를 시작하던 때부터 그의 고향이 거제도라는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됐다. 옥포가 거제도에 있는지, 거제도가 어디께 있는 섬인지조차 제대로 모르던 무식한 서울 촌놈 주제에 옥포 들어가는 노래를 흥얼거렸으니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서울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 동지들과 거제로 차를 운전해 내려가는 길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 번 눈에 익었다고, 몇 번 먼저 와봤다고 함께 온 동지들에게 거제도 지리 같은 것들에 대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행동에서 연대 버스를 조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괜히 마음이 급했다. 하루라도 빨리, 아니 단 몇 시간이라도 먼저 도착해 파업 투쟁의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 동지들의 대우조선에서의 파업에 함께하지 않으면 마음을 넘어 몸까지 아플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급하게 함께 거제로 향할 수 있는 동지들을 조직해 목요일 저녁 서울을 떠나 자정 무렵 거제에 닿았다.
거제도에는 희한한 풍습이 있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부모님 직장 동료들을 거제에서 공간을 마련해 식전에 미리 피로연을 한다고 했다. 피로연이 진행되는 스위띠에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장인어른 직장 동료들이 하나하나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양복이나 사복 같은 옷은 없었다. 회색 작업복. 안전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 차림이었다. 낯설었지만 묘한 동경심 같은 것이 들어 내내 기분이 좋았다. 장모님이 챙겨주신, 아마 받고서 조금 묵혀두셨을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창립 30주년’ 수건을 집에서 쓰면서도 한 번씩 괜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런 대우조선에서 하청노동자 동지들이 사활을 건 투쟁을 하고 있다니, 아찔한 기분이었다. 믿고 있던 세상이 무너질 때의 고통은 생각보다 더 깊이 와닿았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깊숙이 폐부를 도려내는 느낌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지라 스스로도 당혹스러웠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뭔데 이렇게까지 아픈가. 하지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혼자만이 아니었다. 영남권의 수많은 금속노조 소속 동지들을 비롯해 서울에서 급히 조직해 한달음에 거제로 내려온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행동 동지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동지들을 보며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구나, 이제부터 이 투쟁은 제대로 대우조선, 산업은행이라는 커다란 적과 또 더 큰 싸움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거통고 동지들의 요구는 전혀 어렵지 않다. 전혀 무리하지도 않다. 조선산업 망한다 망한다 노래를 부르던 동안, 그래서 조선소 망하면 섬 자체가 망해 나자빠질 거제 섬을 수많은 노동자가 떠나는 동안 30%에 달하는 임금을 삭감당했다. 누가 당신 월급을 어느 날 갑자기 30% 낮춰서 주겠다고 하면 순순히 받아들일 텐가? 하지만 거통고 동지들은 그것을 참고 견뎠다. 이제 조선산업이 다시 회복기에 돌아섰고, 그간 못 받았던 것까지 달라는 것도 아니고 받던 만큼만 다시 월급을 돌려달라는 이야기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일곱 명의 동지 가운데 도크 바닥에서 20미터 떨어진 난간에 여섯 명, 수심보다 더 낮은 곳에 제 생업을 책임지던 용접 기술로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제 몸을 가둔 동지가 한 명이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에 나서라는 말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란 말인가.
이런 처절한 투쟁에 대우조선은, 산업은행은 구사대를 동원해 폭력을 저지르고, 농성장을 시시때때 부수려 하고, 단톡방을 만들어 쌍용자동차 사태와 비교하며 손배소로 수십억 원을 물게 되고 쌍용자동차 사태 때처럼 수십 명이 죽어 나갈 것이라고 낄낄대고 있다.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결사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뒷문을 만들어 들락날락할 것이라며 투쟁을 폄하하는 말을 숨 쉬듯 내뱉고 있다. 투쟁하는 하청노동자 동지들의 톡방에 무시로 드나들며 계속해 인격적 모독과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인면수심의 일들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연영석 동지가 부른 ‘윤식이 나간다’라는 노래가 있다. 조선소에서 배를 띄우는 진수식을 할 때, 그 배를 만들다 죽은 노동자가 있으면 그가 일하던 곳에 담배 한 개비 불붙여 놓아두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윤식이 바다에 나간다며 그의 영혼을 달랜다는 데서 만들어진 노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윤식이 못 나간다.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빼앗긴 동지들이 있는데 그 배라고 마음 편히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마음 편할 리 없다. 이번에는 그 윤식이 절대 못 나간다.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승리로 끝날 때까지, 절대로 못 나간다.
모든 노동자는 하나다. 땀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로 갈라놓아 싸움 붙이며 시시덕거리는 자본의 음모를, 87년 대투쟁을 비롯해 수없는 불굴의 싸움을 거쳐온 자랑스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금속노조 산하 대우조선지회 동지들이 모를 리 없다. 지금까지 무관심해 왔더라도, 혹은 혹여 잘못 생각했더라도, 노동자의 단결이 거짓 선전, 분열의 음모 앞에 결코 무너질 수도 없고, 무너질 리도 없다. 반드시 거통고 동지들의 투쟁에 대우조선지회 동지들, 영남권의 동지들, 전국의 동지들이 함께 연대해 싸우고 이 투쟁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그게 안 된다면, 필자는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에 앞서 말한 수건부터 버릴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결코 그럴 일은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한번, 그때까지는, 윤식이 절대로 나갈 수 없다.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역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 연대하고 함께 투쟁할 것이다.
※ 연영석 '윤식이 나간다' : https://youtu.be/wyx0dZgxUso
2.
저게 바다에 뜨는 거라구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1박2일 연대 보고
조선소 건물 중 하나일까? 아니면 아직 건조 중인 선박일까?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통하는 다리 위에서 입구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흰색 구조물을 보며 든 궁금증이었다.
오늘 2022년 6월 25일을 기준으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은 23일째 이어지고 있다. 파업 전략의 일부로 하청노동자들은 같은 날로 예정된 1도크 진수를 막기 위해 움직였다. 그 전날인 24일에는 조선소 서문 다리 위에서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개최됐다. 이에 연대하기 위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은 금속노조 결의대회 이후 1박 2일에 걸친 결의대회를 이어갔다.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방방곡곡에서 여러 단체가 찾아왔고, 그중에는 낯익은 아시아나케이오지부와 세종호텔지부 동지들도 있었다. 물론 우리 말랑키즘도 6월 20일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공표한 입장문을 읽고 하루 앞선 목요일 저녁에 거제로 향해 1박 2일 결의대회에 참여했다.
조선소 내부에서는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의 부지회장 동지가 가로 세로 1미터 철판을 직접 용접해 만든 철제 상자 안에 자신을 가뒀고, 다른 7명의 동지들도 건조 중인 선박에 올라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진수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높은 강도의 노동과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임금으로 이미 악명 떨치는 조선업이다. 그에 더해 2016년에는 하청노동자 2만5천 명이 해고됐고 임금도 30%나 삭감됐다. 이렇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힘든 억압에 맞서 싸우는 동지들의 투쟁이다. 하지만 힘든 싸움인 만큼 스피커폰으로 연결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던 부지회장 동지와 조선소 내부에서 나오지 못하는 다른 동지들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가득했다.
날씨는 목요일부터 우중충했지만 다행히 구름만 낀 상태로 유지돼, 비는 오지 않았고 따가운 6월 말의 햇살을 맞지도 않았다. 다만, 단 며칠 안에 준비한 희망버스와 결의대회였는지, 모인 인원은 아쉽게도 기대했던 것보다 많지는 않았고 출퇴근길 선전전에서 외친 구호들은 준비가 덜 돼 삐걱거리는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의에 함께 맞서 싸워달라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요청에 달려온 동지들의 마음은 마치 쏟아지기만을 기다리는 폭우의 부글거림과도 같았다. 아직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살짝만 건들이면 거침없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그런 마음. 짧은 준비기간 안에 서문 앞 다리를 채울 만큼의 인원이 모였고, 그 외에도 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과 결의대회 참여자들의 저녁과 아침을 위한 모금도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체계적으로, 서로를 위해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고난의 시간을 함께하기 위한 상호부조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쁘기도 하다.
처음에 언급한 거대한 흰색 구조물은 나중에 카메라 줌으로 확대해서 확인해보니 십 몇 층 건물만 한, 아직 건조 중인 선박이었다. 멀리서 조선소를 보면 이런 선박 말고도, 건조에 사용되는 기중기 여러 대가 보인다. 조선소에서 바다가 아닌 우주도 횡단하는 우주선을 만들고도 남을 것 같은 풍경이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국가의 법을 어겼든 말든, 그들의 저지른 진정한 불법은, 바로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거대한 철제 구조물을 물에 띄우는 물리의 법을 어기는 것이리라! 그런 대단한 일을 조선소 노동자들은 주말 없이 출근하면서 해왔다는 것이다.
건조 중인 선박을 파업을 위해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국가와 자본이 노동자에게 파업할 권리는 쥐여주는데, 자기네들이 진정한 피해를 입는 것은 철저히 막는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 투쟁의 정당함을, 우리 생계의 정당함을 남이 지정해주기를 바라야 하는가? 법이 진정한 정당함을 보장할 것이라는 환상으로부터 하루빨리 자유로워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세상의 주인은 자신들이라는 구호를 그 의미의 근본에서부터 믿었으면 한다. 대우조선 해양 하청노동자가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의 억압과 선동을 헤쳐 나가고, 승리가 있는 끝을 볼 때까지,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은 응원하고 연대할 것이다.
2022년 6월 25일
‘우리들의 상호부조’, 말랑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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